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몽골 제국군 (문단 편집) === 공성 전술 === 공성은 주로 4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공성무기로 성벽을 직접 공격하고, 갱도를 파며, 성벽 아래를 파내려가 붕괴를 유발하고, 사방에서 사다리를 걸어 병사들이 올라가는 방식이었다. 공성무기로는 노포와 투석기 등을 사용했으며 화약을 쓰기도 했다. 화전을 쏘거나 쇠로 만든 폭탄, 나프타 단지 등을 투석기로 발사했으며 훌레구의 바그다드 공성전에서는 투사체를 찾을 수 없게 되자 근처의 야자수를 잘라 불을 붙여 쐈다. 남송과의 전투에서는 아랍인들이 만들어낸 회회포로 한족의 견고한 요새를 때려부쉈다. 이미 소이탄 형식의 폭약이 사용되었고, 연막과 악취를 동반한 무기도 있었다. 이는 유럽인들로 하여금 몽골군이 '악마의 자식'이라는 생각을 더욱 더 굳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몽골군의 공성에서 가장 크게 두드러지는 특징은 '''피정복민을 최대한 활용했다는 것이다.''' 《몽달비록》에는 큰 성을 공격하기에 앞서 근처의 마을과 도시들을 먼저 공략하고 병사 1명당 10명의 포로를 확보하게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는 러시아의 《노브고로드 연대기》와도 일치하는 기록으로, 그렇게 잡혀온 포로들은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다. 이들은 각자에게 부과된 풀과 땔감, 흙, 돌을 모아와야 했으며 공성전의 가장 위험한 작업에 투입되었다. 성벽 아래의 해자를 메우고 참호를 파야 했는데, 몽골군은 아무리 많은 수가 죽어도 슬퍼하지 않았으며, 일하는데 굼뜬 자는 주저없이 죽였다고 한다. 여러 거점을 동시에 공격하는 전법은 적을 패닉에 빠뜨리고 지원군을 차단하는데 효과적이었다. 적의 움직임을 종잡을 수 없게 된 수비대의 지휘관들이 각자의 담당구역을 방어하는데 전념하는 사이, 몽골군은 재빠르게 작은 거점들을 각개격파한 후 남아있는 요새들을 고립시켰다. 이런 방식은 대량의 피난민을 발생시켜 적에게 공포감으로 인한 공황을 일으키는 효과도 있었다. 난민들은 공포를 확산시키는 한편 적의 식량사정을 더욱 어렵게 했다. [[흑사병]]으로 죽은 시체들을 [[투석기]]로 적의 성내에 투하해 [[흑사병]]으로 성내를 초토화시키는 작전도 썼다. 그러나 이는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연구가 있다[[https://www.medhist.or.kr/journal/view.php?doi=10.13081/kjmh.2021.30.465|#]].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